restoring our biblical and constitutional foundations

                

십자가에 대한 마가의 신학

Mark's Theology of the Cross

 David Alan Black  

데이비드 알렌 블랙

나는 열살의 소년으로 하와이에서 자라면서 나의 목사님이 교회에서 해고를 당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목사님은 친절했고 나이가 드신 진정한 성도였다. 그는 각별하게 목양을 하셨으며 좋은 강해 설교자였다. 그런데 목사님은 뇌졸중으로 고통받았다. 그의 연약함과 쇠약함 가운데도 인내하며  섬기려는 마음은 나에게 열망을 남기었다. 20 후에 내가 베젤에서 같은 주제로 박사 논문을  것을 모른 나는 생각했었다,  “ 얼마나 연약함 가운데 능력 있는 본이 되는가?” (사도바울의 연약함) 그런데 갑자기 목사님이 가버리셨다. 어른들은목사님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너무 힘들어”, “그분은 은퇴하고 어디로 준비가 됐어!”, “목사님 때문에 어린 유소년들이 떠나고 있어,” 라고 계속 이야기 했다.  “자비로운 하늘이여”,”이것이 교회가 자신의 목사님을 대하는 태도입니까?”  나는 소리쳤다

예수님도 그의  새로운 제자들로 인해서 비슷한 어려움을 직면하셨다. 그들은 유대 율법학자로부터 왜곡된 리더쉽을 배웠다. 그것은 알아차린 예수님이 그들의 영적 리더쉽과 파워에 대한 개념들을  다시 새롭게 하셨다. 새로운 정의는 너무나 깊어서 우리는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2 동안 내가 마가복음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정확하게 그것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마가복음이 가장 초기에 쓰여진 복음서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결론에 대해서 많은 이유들로 인해 질문을 던질 있다. (나의 사복음서인가 읽어보라마가복음은 사도 베드로의 눈으로 목도한 간증으로 이루어져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을 목격한 장로였다(벧전5:1).  마가는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고(5:3) 실누아노가 베드로를 대필해서 베드로전서를 썼던 것처럼 마가가 베드로의 속기자로 마가복음을 썼을 교부 증거가 확실하다

요즘 학자들은 제안하길 마가복음은 도입부분이 있는 열정적 서술이라고 주장한다. 위트가 있지만 정확한 묘사가 있다. 내가 사복음서인가라는 책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마가에 의하면 우리의 관심을 개의 주요 주제로 향하게 한다. 하나는 그리스도론 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론 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론적인 주제이다. 마가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을 죽인 유대인의 리더의 손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자로 소개한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마가복음에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개의 열정적 서술이 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시작부터 아주 모순적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단지 명령만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는 반대로 낮은 자의 태도의 본이 되셨다. 예수님의 미션은 세상적 방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난 받고 거절당하는 것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야기 하길(가장 눈에 띄는 학자는 랄피 마틴이다. 그의 마가: 전도자이며 신학자에서), 바울의 메시지가 잘못 이해되는 위험을 교회가 직면하게 되어서 마가복음이 기록되어졌다 주장한다. 특히 그의 서신서의  “십자가 신학이다. 바울과 베드로 모두 예수님은 거절당함과 십자가로 인해 영광을 얻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라는 나의 책에서 언급한 빌립보서2:5-11 거룩한 낮아짐을 비교해보라.

고통과 거절의 주제는 마가복음에서 웅장한 수사학적 방법으로 진행이 된다. 만약 메시야가 승리가 아닌 고통을, 인기가 아닌 거절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예수님을 당했던 같은 것을 당해야 하는가 (8:34-38,13:9-13)? 마가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것이 수반되어야 하는 제자화와 선교에서부터 너무나 동떨어진 크리스천들에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H. Adderson, The Gospel of Mark, p.55)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제자화와 상관없는 어떤 결속이나 사랑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는 단호 하게 그것들을 다루어야 하고 깨뜨려야 것이다. 십자가는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죽음의 도구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비록  모든 개인적 야망, 자기를 위한 어떤 업적이 사람들에게 숭고하게 보일지 몰라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는 것이 요구된다. 진정한 제자화는 모든 어떤 세상의 소유보다 소중한 보화이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의  가치에 해당되는 진주와 같다. 게다가 마가복음은 말하길 제자화는 애매하게 실천되지 않음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마가는 독자가 화려한 신학이 아니라 복음의 행동이 있기를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고통의 원리가 제한없이 받아질 교회의 진정한 새로워 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것처럼 여기 근본적인 마가의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모든 남자, 여자, 목회자, 평신도, 노인, 젊은이들 모두에게 적용해야 하는 개인적 참여의 메시지이다. 모든 크리스천은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십자가를 짊어 지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순종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반대하는 사람이다몇몇의 적은 수의 성직자들이 낮은 신분의 일반적 신자보다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어 비교됨에서 오는 영광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뒷좌석에 앉아있는, 뒤로 빠져있는 수많은 평범한 크리스천들이 순종하기 원하는 마음으로 만족하는 것이 낫다. 높아진 성직자들의 태도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에서부터 아주 멀다.

우리가 보았듯이, 마가복음에서 공부한 우리의 과제는 단지 해석적인 것을 넘어선다. 성경적 관점에서 우리는 사역의 전체적 문제를 보려고 노력한다.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격려 할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해석은 전체 크리스천 교회와 단체에 완전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마가복음의십자가 신학 메시지는 실제적으로 교회에서 환영 받지 못하고 있음을 당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헌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실패했다.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자기의로움의 공동체가 아니라 비록 자신을 부족하고 가치 없다고 여길지 모르나 세상으로 나아가 모든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완전히 헌신된 형제, 자매들의 공동체이다(16:15). 모든 멤버가 완전히 이것을 이루어낸 교회가 진정으로 가르침을 계승하는데 성공한 교회이다. 당신과 내가 우주적인 사명에서 우리가 하는 역할을 빨리 인정할수록 현대 세계에서 기독교에 대항하여 배열된 세력들은 그리스도의 대의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것이다.

May 27, 2019

David Alan Black is the editor of www.daveblack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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