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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Leadership According to Philippians 1:1 (Korean)

 David Alan Black  

빌립보서 1장의 교회 리더십 

사도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라고 디모데후서 3 16절에서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모든”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무조건적인

축자 영감”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아마 우리도 이 말씀을 가지고 단순히 “모든 말씀들이 모든

곳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감동된 것이다”라고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뿐만 아니라

이 말씀 속에 들어있는 모든 시제, , 서법, 인칭, , , 격 등 모든 문법의 요소들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뿐만 아니라 유용하고 유익하다고 같은 구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성경은 단순히 정보로써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의 구절들이 모든

곳에서 우리들을 변화시키는 데 쓰여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11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인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 하노니” 특별히,

구절에서 두 개의 헬라어 단어가 교회 지도자들을 묘사하는 데 교차적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Presbuteros 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장로들을 가르치는데

사용되어지고, Episkopos는 감독을 지칭하는데 사용 되어집니다. 신약시대의 초대교회에서는 다수

의 장로들이나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단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 행해지는 리더십은

그 한 사람을 집중해서 모든 것이 행해지게 될 터이고, 이러는 가운데 회중은 이 한 사람을

칭송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지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기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칭송을 받아야 할 것이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1:15-20, 23:8-12). 따라서,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인사를 할 때에도 단 한 사람의 목사나 감독에게 인사를 한 것이 아니라 감독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한 명의 목사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분명히 아닙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을 묘사할 때에도 그들이 지도자들 “아래에”(헬라어 전치사의 hupo)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감독들과 집사들과 “함께” (헬라어의 sun)있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우연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볼 때 모든 성도들은 사역자입니다.

, 교회 내에서 다른 성도들을 지시 감독하는 아무런 지위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몇 명의 사역자들은 더욱더 많은 시간과 헌신을 그들의 사역에 집중하여서 교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성도들은 사역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영국 그리스도 교회의 Alec Motyer는 다음과 같이 그의 책 “빌립보서의 메시지(The Message of Philippians)”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역교회에서 친교(모든 성도들)와 리더십(감독들과 집사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리더십은 친교와 별개 된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해서 더욱더 확대된 개념이었다. , 모든 성도들은 감독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감독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Motyer는 또한 덧붙여서 말하기를 “이러한 사례가 성경에서 항상 보여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역의 모습들은 교회의 필요와 상관없이 그들이 생각하는 교회 자체로써 그들이 삶의 모습으로 행해졌던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것에 비춰볼 때 신약교회에서는 하나님과 교회사이의 중재자에 대한 어떠한 명시도 없었다”(p35) Motyer는 덧붙여서 설명하기를 신약교회의 교리 중에서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는 가르침은 교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성경적인 모습이었다라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하게 살펴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독들”이나 “집사들”이라는 단어들이 헬라어의 관사와 함께 쓰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헬라어에서 관사를 사용할 때 이는 그 단어에 대한 특별한 정체성을 지적할 때 쓰여집니다. 반면에 이 관사가 사용되지 않으면 이는 그 단어에 대한 성격이나 특성을 강조하게 됩니다. 분명히 사도바울은 이러한 문법적인 구조를 가지고 그들의 자격이나 지위를 설명하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이들 개개인들의 사역을 강조하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법적인 구조를 가지고 이에 대한 설명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여러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살전 5:12-13, 고전 12:28-31, 12:6-8). 이를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사도적 권위 아래 있었던 지역교회들은 각각의 교회가 그 자체의 회중을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리더십이 행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암시하는 것은 매우 크다고 보여집니다. 만약에 당신이 오늘날의 어느 교회를

가게 되든지 당신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명확하게 구분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교회가 한 사람의 목회자에 의해서 목양되는 것을 종종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은 이러한 교회의 리더십이 목사들, 장로들, 집사들 아니면 시무장로들과

가르치는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무장로들의 역할은 좀더 행정적인 분야에 가까워서

목회의 분야에서도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모든

것들은 성서적인 모델이 아닙니다. 신약의 몇몇 구절들은 장로들이 교회의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들이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이들이 목사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장로들은 항상 다른 장로들과 연합하여서 사역을 진행하며

요한 삼서에 나와있는 디오드레베 처럼 상하구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단 한 사람의 목사에 의해서 모든 사역이 진행되고, 성도들은 그냥 이러한 사역들을

지켜만 보면서 이루어 지는 곳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교회사역을 이끌 수가 없기 때문에 신약의

교회구조는 다양한 사람들이 동등하게 사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신약의 교회 구조

내에서 어떠한 상하구조적인 면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특정한 사람들은 그들의

지혜와 경험을 토대로 이들 안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 보여지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은

모두가 동등하며 서로를 돕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예배에서도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진행하지 않고, 모든 회중들의 다양한 참여가

있었습니다.( 12:4-8, 고전 14:26, 4:11-16, 5:19, 3:16, 10:24-25, 벧전 4:10-11)

아울러서, 이러한 모습이 당시 지역을 초월한 모든 사도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고전 4:16-17,

11:16, 14:33). 신약성경은 모든 성도들의 모임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령의 은사들과 다른 사람

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랑해주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임들에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특별한 구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울러서, 이 회중들의 지도자들은 자신들

을 명예스러운 지위를 통해서 남은 성도들과 구분 지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Biblical Eldership”

이라는 책을 쓴 Alexander Strauch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p. 259):

 

초대교회 내에서도 예언자들, 교사들, 사도들, 목사들, 전도자들, 지도자들,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들의 명칭은 공식적인 지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신도들이었으나 “성자 요한”은 그 중에 없었다. 그들 모두가 제사장들이었으

“제사장 빌립”은 그들 중에 없었다. 이 중에서는 장로들이 있었으나, “장로 바울”이 이들 중에

없었다. 이들 중에는 목사들이 있었으나, “목사 야고보”는 이들 중에 없었다. 이들 중에 집사들이

있었지만 “집사 베드로”는 이들 중에 없었다. 이들 중에는 사도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에 “사도

안드레”는 없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지위를 통해서 명예를 얻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그들의 명칭은 그들의 섬김과 사역을 위한 것이었다. ( 15:26, 16:1,2,4 12:1 고후 8:18

2:29,30 1:7; 4:12, 13 살전 5:12; 딤전 3:1).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에 대해서 언급할 때

개인적인 이름을 사용하거나 (디모데, 바울, 디도) 개개인의 영적인 성품과 사역에 대해서 언급을

해 주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6:5),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

한 자라…”( 11:24), “… 복음 전도자 빌립…”( 21: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동역자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16:3), “너를 위해서 열심히 사역한 마리아…”( 16:6)…

이러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오늘 날의 교회 내에서의 지위와 명칭들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

이 사용했었던 것에 견주어 볼 때 많은 것이 왜곡되어있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오늘날 교회내의 리더십에 대해서 많은 변화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통적인 목회구조는 계속해서 한 명의 목사에 집중되어 있는 비성서적인 모델의

모습입니다. 반대로, 신약성서는 다수의 장로로 불려지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이루어졌던 것

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장로들은 다른 특별한 은사를 받아서 특정한 목회적인 일들을

감당했을지 몰라도 교회 지도자들이 어떠한 명예와 지위로 분리되어서 교회의 사역을 감당했었

던 것은 분명히 아닌 것입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목사”에 대한 개념은 분명히 비성서적으로 보여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오늘 날과 같이 두 부류의 크리스챤 그룹을 얘기하지 않습니다(성직자와 성도들).

성경에 의하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로써 모든 사역에 범위에 있어서 그들의

영적인 은사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서 아름답게 사역을 행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바로 빌립보서 1 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아울러서,

위에서 언급되었던 Alec Motyer도 이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합니다(p. 40):

 

어떤 리더쉽이 초대교회에서 행해졌습니까? 지도자와 교회 구성원들의 관계는 과연

어떠했습니까? 저는 함께(with)라는 단어가 바로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1 1절에서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이라고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선천적으로 뛰어난 지도자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지만 이와 반대로 부족한 지도자는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어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더욱더 많은

사역의 요구가 있고 많은 훈련이 뒤따르지만 그 이후에 보다 더 큰 보상이 뒤따르는 것은

바로 성도들과 감독들, 그리고 집사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동등하게 사역을 감당할 때 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리더십은 많은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자와 구성원들은 서로 같은 기독교인으로

의 경험을 나누게 됩니다. , 모두가 다 같은 주님의 귀한 대속의 피로 인해서 구원받은

죄인이었으며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가운데 이들 모두는 평안의 줄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가운데 리더들은 자신들을 교회의 하나의 구성원 중에 한 명으로 보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을 돕는 사람들로써 사역을 하는 자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그들은 모든 상황을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아무런 외부적인 요인들이 그들의 상황들을 달리 생각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항상 성령께서 교회를 향하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끊임없이 인내하는 것을

포함할 것입니다. 아울러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편견으로 성도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깨끗하고 열린 관계 안에서 교회 구성원들을 그들의 명백한 정직성으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리더십은 모두가 함께하는 리더십으로써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위해서 다른 여러 가지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항들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이러한 리더십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 성공, 그리고 명성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바로 이러한 리더십이 성도들 가운데에서 이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행해야

할 진정한 리더십의 모습인 것입니다.   

 March 14, 2008

David Alan Black is the editor of www.daveblack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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